[서귀포] 티벳풍경 게스트하우스 : 혼숙 도미토리 첫 경험 족저근막염환우

히든 클리프에서의 1박 후, 친구를 보내고 나는 홀로 게하에서 묵었다. (2017.05.13~14)

이번 여행에서는 숙소의 비중이 어마어마했다고 지난 히든 클리프 후기에서도 적은 바 있다. 나로서는 호텔에 그 많은 돈을 쓰는 것도 처음인 한편, 혼숙 도미토리를 이용해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실, 여러가지 일들로 '노숙'에 가까웠던 '혼숙'에는 이골이 났던 나라서 큰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아예 일면식도 없는 이들과 '혼숙'을 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어떨지 걱정이 되기는 했다. 

이날 동선이 매우 꼬여서 중문에 있는 히든 클리프에서 협재에 갔다가 대평리로 돌아왔다.
중문과 대평리가 지척이니까, 한마디로 협재에 다녀오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셈.
협재에서 버스로 안덕농협 앞에 내렸는데, 별 달리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탔다.
2킬로인가,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아저씨는 대평리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들다며 무조건 8,000원을 외쳤고,
기진맥진한 호갱은 그저 고분고분 따랐다...

택시 아저씨도 단번에 알아듣던 '티벳풍경 게스트하우스'.
그걸 보고 '아, 여기 유명한 곳이구나' 했다.

물 건너온 '릭샤'가 반겨주는 앞마당. 들어서기가 무섭게 스탭분이 안내를 한다.
"여기, 여기가 샤워실, 화장실이구요. 여기 2층 침대 쓰시면 돼요." 
아주 간결하게 설명을 휘리릭 하고 가셨는데 정신없는 와중에도 모조리 숙지는 되더라.

처음 받은 인상은, 사진으로 보던 것과 똑같다는 것?
혹자는 이 사진을 보고 "다 쓰러져 가네" 하던데 워낙 열악한 숙소를 많이 경험했던 나로서는 "딱 보던대로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7일 도미토리의 2층 침대를 배정받았다. 저기 보이는 2층 자리가 바로 내 자리.
건너편 침대의 가로로 놓인 2층 자리도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분 차지였는데, 나름 여성들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그런 것 같았다.
1층엔 먼저 온 남자분이 노트북을 하는 중이었는데, 마침 원피스를 입었던 터라 더욱 조심하며 침대 계단을 올랐다.
정신없이 짐을 펴고 있으려니 밑에서 들려오는 말 "어디서 오셨어요?"
한참을 침대에 누워서 목소리만 들으며 대화를 했다.

"이렇게 얼굴 안 보고 대화하는 거 신기하네요~"
"그러게요?"

여행 루트, 하는 일, 이 게하에 오게 되기까지... 등을 두서없이 얘기하다보니 건너편 침대의 여행자가 왔다.
"저녁들 드셨어요?" "아니요~" "드시러 가실래요?" 
자연스럽게 낯선 이들과 저녁을 먹었다.

저녁 어스름의 '티벳풍경'. 색색깔 천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저녁을 먹고, 잠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스탭분이 와서 "막걸리 파티 하실 분~" 했다.
주인장인 사리언니라는 분이 그날은 육지 출타중이래서, 혹시 막걸리 파티가 없을까 우리는 저녁 자리에서 이미 '선 막걸리'를 한 상태였다. 

그래도 아랑곳 않고 또 마시러 갔다. 파티 비용은 단돈 3,000원.

거실에서 과자를 수북이 쌓아두고 방부제가 안 들어가서 유통기한이 10일에 불과하다는 '제주 막걸리'를 마셨다.
많이 달지도, 많이 무겁지도 않아 산뜻한 느낌. 그래서 더 꿀떡꿀떡 들어갔다.

그 날의 파티원은 도시에서 제주로 아예 이주해 온 분들과, 제주로 여행 온 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제주에의 이주를 막연하나마 끊임없이 생각하는 나는 제주로 아예 오신 분들께 계속 물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냐고.
그런 것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오게 됐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대답이었는데, 내게는 좀 심심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어떻게, 별 계기도 없이 그렇게 큰 결심을 하게 될 수가 있지...?
그래서 계속 묻는 내게 어떤 분이 한 마디 했다. 그런 생각이면 제주에 올 수 없다고.
그 말이 뇌리에 콱 박혔다.

다음날 아침, 방부제가 안 들어갔다던 막걸리는 정말로 숙취가 없었다.
오전 6시쯤, 비교적 일찍 깨서 마을 산책에 나섰다.

멀리 박수기정이 보인다.
주위에 마늘밭이 많아서 마늘 냄새가 싱그럽게 진동했다.

8시에 조식을 먹으면 된다, 는 말을 전날 스탭분으로부터 들었었는데 8시가 되고 나서도 다들 기척이 없어서 가만히 짜져 있었다.
근데 전날 막걸리 파티를 함께 했던 동갑내기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걸 살풋 엿봤더니, 여기선 각자가 해먹는 거란다.
아하, 간단하게 계란 후라이 하나를 부치고 커피를 따라 왔다.
마루에 앉아 먹는 커피와 계란 후라이가, 전날 마신 조식보다 훨씬 맛있었다.

책을 읽으며, 노래를 들으며 혹은 오로지 커피만 마시며 저 닭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

너무 인위적인 후리함, 일까 걱정했는데 티벳풍경은 비교적 모든게 자연스러워 좋았다.
후리함 속에 질서정연함이 돋보인달까.
'빈티지'라는 말이 곧 더러움을 의미하지 않듯, 내 기준에 티벳풍경은 적당히 깨끗했다.
불편한 것이라 한다면 샤워실 문이 아귀가 좀 안 맞아서, 문을 잠그고서도 계속 돌아보게 된다는 점?
그 외에는 모든 게 내 생각보다 풍족했다. 

요즈음은 미리 장기자랑을 준비해 가야할 만치... 빡센 게하들도 많다 들었는데 
막걸리 파티도 참가는 자유인 한편, 10시 30분 즈음이면 칼같이 파했다.
그곳의 술 파티는 막걸리나 맥주처럼 도수가 약한 술은 허해도 소주는 허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술을 취할 때까지 마셨다 생길 수 있는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은 탄산수를 마셨다. 자유로움 속에 절제미가 있었다.

혼숙 도미토리는, 워낙 내가 '혼숙'이라는 것에 대한 벽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나쁘지 않았다.
공간적으로 온돌방에 남녀가 뒤섞여 붙어 자야 했던 상황도 나는 자주 마주 쳤었으니까.
단, 나는 술 먹으면 코 고는 버릇이 있어서 간밤에 민폐를 끼칠까 매우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가 곤 것은 아닌 걸로...
다만 옷을 갈아 입을 때 다소간 불편하긴 했지만 도미토리에 바로 붙어 있는 자그마한 화장실을 이용하는 걸로 만족했다.

다음에 제주에 오면, 그때는 티벳풍경에만 2박쯤 묵을 작정이다.
티풍을 기점으로 이중섭 미술관이 있는 서귀포 시내도 다녀오고, 근처 오름도 다녀오고 싶다.
대평리 바당도 더 하염없이 보고.

아, 7인 도미토리는 1박에 20,000원이었다.

티벳풍경 게스트하우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난드르로21번길 10
cafe.naver.com/tibetscen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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