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히든 클리프 호텔&네이쳐 : 非호텔형 인간 족저근막염환우

여행마다 테마라는 게 있다.

이번 제주 여행은 워낙이 숙소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뚜벅이 여행의 특성상 숙소를 거점 삼아 왔다리 갔다리 하는데다, 첫날 묵은 곳과 둘째날 묵었던 숙소의 콘트라스트가 커서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탓도 있다. 

친구와 함께 했던 첫째날(5/12)에는 호텔에, 혼자였던 둘째날(5/13)에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친구나 나나 호텔을 고르는데 주효했던 기준은 "이번엔 좀 제대로 호텔 놀이를 즐겨보자" 하는 거였다. 지난해 함께 했던 방콕 여행에서, 우리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레지던스를 갔었다. 함께 했던 다른 한 친구가 그곳을 적극 추천했다. 물가가 싼 방콕에나 가야 호텔 놀이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며 우리는 콘래드나 반얀트리가 어떨까 했지만 결국 여행 계획 짜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다른 친구의 말을 들었다. 

방콕에서 못 다한 본격 고급진 호텔 놀이를 위해 호텔은 고급진 곳으로, 가 우리의 모토였다.
그리고 방콕에서 수영에 맛을 들인 내가 찾는 사계절 온수풀과 친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식이 맛있는 곳이 추가가 됐다.

그렇게 먼저 알아본 곳이 신라였는데, 둘이서 조식+택스 포함 40만원이 넘어가서 패스. (양심상 1박에 40만원은 못하겠더라.)
30만원대로 찾다가 간택된 곳이 작년에 개장한 히든 클리프였다. 
비슷한 조건의 루스톤빌라앤호텔과 견주다가, 그 즈음 히든 클리프를 찾은 지인을 둔 친구가 "조식이 맛있대~" 하는 얘기에 히든 클리프로 최종 낙찰했다.

우리가 배정 받은 5층의 '디럭스 트윈룸'.

방문을 딱 열었을 때 드는 느낌은 "아, 작다..." 였다.
좋게 말하면 긴요한 것만 갖춘 심플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즈니스 호텔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작지...? 하는 수준의 그것. 

더블 사이즈의 침대 하나와 싱글 침대 하나가 있어서 가기 전부터 가위바위보로 침대를 정했다.
위너인 내가 더블을, 친구가 싱글을 쓰는 걸로.

테이블에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 있다.
근데 어인 일인지 내 안드로이드폰도, 친구의 아이폰도 자꾸 저 스피커를 잡지 못하더라.
안내 책자에 적힌 사용법이란 게 너무 러프해서, 프론트 데스크로 전화도 했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빈정이 팍 상했다.
블로그 후기들에도 끝끝내 사용법을 몰라 사용을 못 했다는 평이 많더라.

결국 스피커의 무선 충전 기능만 간헐적으로 사용했다.

미닫이문으로 여닫을 수 있게 돼 있던 욕실과 화장실.
가끔 샤워꼭지가 없거나, 혹은 투명한 유리문만 있는 욕실&화장실에 기겁하던 나로서는 꽤 무난한 구성이었다.

어메니티가 록시땅이라는 게 이 호텔 후기마다 콕콕 적혀 있었는데, 가히 록시땅이라는 게 좋긴 좋더라.
(히든 클리프 안에 있는 스파도 록시땅이다.)
록시땅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거품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직접 써보니 나쁘지 않았다.
샴푸, 린스, 바디젤 등은 바리바리 챙겨가서 다음날 게하에서도 썼다...

샤워캡과 빗과 면도기와 칫솔 등속.
칫솔만 한 번 썼다.

'히든 클리프'가 박힌 실내화.
남자랑 온 것처럼 남자 발처럼 찍어보려 무난히 애를 썼지만 이러나 저러나 여자 발인 것으로...

우리 방의 뷰는 이러했다.
호텔이란 것이 모름지기 뷰가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중문이란 곳의 위치 특성상 좋은 뷰가 나오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냉장고 속에는 삼다수 두 병과 감귤 음료 두 캔, 코카콜라 한 캔, '자유시간' 2개, 마스크팩 2개가 있었다.
마스크팩과 콜라만 제외하고 깨알같이 이용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히든 클리프의 자랑, 인피니티 풀.
사계절 온수풀이라 비가 간헐적으로 쏟아지는데다 꽤 춥던 이 날도 이용할 수 있었다.
조명이 쏟아지는 풀 위에서 금도끼 은도끼 산신령이 나올 법한 수증기를 보는 게 신묘하게 느껴졌다.

싱가포르에 있다는 마리나베이샌드 수영장과 비교들 많이 하던데 안 가봐서 직접적 비교는 불가고,
생각보다는 풀이 작아 놀랬다. 
1.2m 깊이의 수심은 킥판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내게 적당했고, 물 온도도 기분 좋을 만큼 따뜻했다.

매일 오후 8시~10시까지는 화려한 조명과 함께 디제잉이 펼쳐지는 풀파티를 한단다.
얼핏 보니 '타이타닉'을 찍는 커플들이 많고, 어린 자녀를 둔 가족들도 왕왕 있었다.

비가 오고, 기온이 꽤 떨어졌던 이 날은 아무래도 비키니 입을 날씨가 아니었더랬는데... 래쉬가드 따위는 없는 나는 꿋꿋이 비키니를 입었다가 감히 선베드에 앉을 엄두를 못 냈다. 너무 추워서.

다른 데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샤워장에 탈수기가 있어서 참 좋았다. 비키니를 대충 빨아 휘리릭 돌려 널었더니 금방 말랐다.

다음날 신나는 조식 타임.
미리 조식 결제를 안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1인당 34,200원씩 결제했다.
(할인되는 카드들도 있는데 우린 아무것도 해당이 안 됐다.)

간헐적으로 셔터를 눌러대서 극히 일부만 찍혔는데, 전반적으로 무난했다.
내가 사족을 못쓰는 소세지들이 통통하니 짜지 않은 게 가장 만족스러웠고,
핸드드립 커피를 종류별로 구비해 놓은 것도 인상적. 

같이 간 친구는 쌀국수와 오렌지 착즙 주스를 좋아하더라. 나는 먹어보지 못했다. 

조식을 먹는 '파노라마'에서는 풀이 내다 보인다.
'쿵짝쿵짝' 클럽 비트에 들썩대던 풀은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평화롭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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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들 중에 호텔을 좋아하는 사람과 호텔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호텔에 많은 돈을 지불한 준비가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렇지 않은 이'에 속한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았다.

그게 꼭 히든 클리프라서 그렇다고는 생각치 않고, 
호텔 놀이를 할 돈이면 옷이나 화장품이나 책을 더 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일 뿐인걸.

그래서 호텔 놀이를 별로 즐기지 못하는 내가 '솔직 후기'를 넘어서는 '까칠'에 가까운 평가를 해보자면
나는 그 돈 들여 이 곳에 묵지는 않겠다는 것. (조식까지 1박에 1인당 16만원 정도를 썼다.)

일단 이 호텔의 최대 장점인 인피니티풀은 수영을 오래는 못하는 내가 구비구비 누리기엔 한계가 있었고,
뭣보다 베딩이 딱딱한 것은 좀 에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몸을 뉘여 도합 9시간 가까이 잤더니 나중엔 허리가 좀 아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

두서없이 후기를 썼는데, 정리하자면 요 정도다.


[서귀포] 히든 클리프 호텔&네이쳐
제주 서귀포시 예래해안로 542

장점
-사계절 온수풀
-조식 뷔페의 핸드드립 커피들
-록시땅 어메니티
-전체적으로 깨끗한 편

단점
-딱딱한 베딩
-협소한 객실 실내
-블루투스 스피커의 무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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