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중간 점검 이렇게살고있어

오늘로 딱 병가가 2주 지났다. 총 4주를 냈으니 반이 지난 것.

병가가 내게 준 선물로는 이너피스, 또 이너피스, 또 이너피스가 있겠다. 사실 하루종일 스마트폰이나 TV, 책이나 미드에 노출돼 별로 생각이란 걸 할 시간이 없었지만, 쨌든 내 자신을 톺아보는 계기는 됐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싫어하는 것 

- 회사 : 솔직히 나는 이렇게 오래 쉬게 되면, 너무 따분해서라도 회사에 돌아가고픈 마음이 들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더더더 돌아가기 싫어지고 이 언뜻 무용해 뵈는 시간들이 너무 가치있게 느껴지는 것. 그래서 이직에 대한 생각을 곰곰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나는 또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같은 일을 하면서 회사만 옮기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이 경력을 살리는 일에 종사하고 싶지도 않다. 어디 신입 공채로 들어가야 할까, 자격증을 따야 할까.

- 이기주의자 : 이걸 누군들 좋아하겠냐만은, 그래도 나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 되레 멋지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었다. 예의 차리는 세상에서, 남 눈치보지 않고 자기 욕망에만 충실하기 쉽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게 선을 넘어서 남에게 민폐 끼치는 수준이 돼서도 자각을 못하는 이들이 있다. 퍽 가깝던 이들에게 실망했고, 이들과 불가근불가원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고 있다.

- 무의미한 시간 : 세상에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고, 가슴은 생각하면서도 머리가 자꾸 반박한다. 그냥 좋아하는 거 하고, 싫어하는 건 하지 마는 식으로 시간을 때워도 되련만 자꾸만 공부를 하려고, 책이라도 한 톨 읽으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왜 이 시간을 오롯이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공부하라는 채찍질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멀리서 기원을 찾는 것 아닌가. 결국 내 강박에서 비롯된 일 같은데.


좋아하는 것

- 영어 : 시험용 영어만 했던 탓에 작문, 회화 등 실전 영어에는 젬병이었다. 그래서 외국인 앞에만 가면 식은 땀이 나고, 업무적으로 영어를 써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쪼그라들어 내가 영어를 무진장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근데 집에 있는 내내 미드로, 그리고 과외 숙제로 영어를 말하고 듣고 쓰다보니, 나름 재밌는걸? 좋아하는 외국 패션 유튜버의 영상에서 문장이 귀에 콕콕 박힐 때, 친구와 나누는 영어 카톡이 술술 풀릴 때 기분이 매우 좋다.

- 커피 : 하루에 2~3개 집에 있는 캡슐 커피를 소모하는데, 그때마다 많이 먹는다고 동생한테 혼난다. 그래도 끊을 수 없는 커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뭔가 마시는 행위에만 골몰해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소간 스트레스가 없어도 커피를 찾는 걸 보니 진짜 좋아하긴 하나보다.

- 알쓸신잡 : 알쓸신잡을 너무 좋아해서, 알쓸신잡이 방영되는 금요일을 기준으로 내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단, 최근에 너무 무리하게 학술적인 얘기를 끼워넣으면서 알쓸신잡이 EBS화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재들 술자리가 재밌는 건 약간의 뻥카와 허세, 진솔한 토로 등이 버무려 졌을 때인데 집에서 준비해 온 지식을 풀어놓겠다고 덤벼들면 무슨 재민가 말이다. (최근의 알쓸신잡은 술자리 컨셉과는 거리가 있는 성 싶지만 아무튼) 다리만 다 나으면 알쓸신잡에 나온 여행지들을 훑고 다닐텐데!

- 이서울 : 이서울을 안고, 커피를 마시면서 미드나 알쓸신잡을 보는 게 이 세상 최고의 행복.

- 옷과 가방, 그리고 구두 : 블프를 계기로 하루종일 집에서 직구 카페, 사이트 등등을 전전하고 있다. 최근엔 화장품보다는 옷쪽으로 관심이 확 기울어서 요즘 최고의 소망이 있다면 이 구역 최고의 패피가 되는 것! 옷 잘 입는 사람들 보면 그렇게나 멋져 보인다. 옷이 많은 사람보다 자기 몸에 딱 맞는 스타일의 옷을 두고두고 소화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자면,

- 단편소설 탈고 : 병가에 들어가며 썼던 포스팅에 쓰지 못했던 그 얘기, 단편소설 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나는 써 봐야지 않을까.
- grammar in use 통독 : 한 번은 다 읽고 출근하겠다.
- 10년 쓸 레드 크로스백 사기 : 레드 or 버건디 크로스백을 찾고 있다. 올초부터 앓이가 시작됐던 것 같은데, 아직 못 찾았다. 블프 기간에 꼭 찾고 말리.

참으로 좋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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